625전쟁중
통영피난시절에
육군에 입대하면 죽기쉽다는
참전용사친구의 말을 듣고
안죽을려고
10대1의 경쟁율을 뚫고
해군에 지원입대를 햇다
몇년후에 운이 좋아서
캘리포니아, 싼디에이고에 있는
미해군 7함대기지내의
미해군 기관학교에
10개월동안의
해군군사유학을 갔섯다
겨우 초등학교만 졸업한놈이
짧디 짧은 영어로
해군관련 기계기술 수업을 받으면서
쌩똥을 싸다시피햇다
기계기술공부는 뒷전이고
영어단어공부가 먼저라서
밤잠도 제대로 못자고는
왼손에 일영사전(콘사이스)을 펴들고
오른손에 볼펜을 쥐고
영어단어를 찾다보니
콘사이스가 걸레짝이 되어버렷다
해방직후에는
국산영한사전은 책이 너무크고
종이의 질도 나쁘고
번역의 범위마저 쫍아서
기계관계 전문단어가 없다싶이해서
부산 광복동 일본어서점에서
화(일)영사전을 구입을 했섯다
수업중에 미군부사관인 교관이
한글로 번역을 하다가
일어로 번역을 하다가 하는 나를보고
일본인이냐? 한국인이냐?하면서
놀라든 기억이난다
지금~
8땡이 늙은이가가되어
걸레짝 콘사이스를 다시보니
글이 너무 작아서
돋보기를 껴도 잘안보인다
이제 쓸모가 없는
추억의 콘사이서를
나무보일러속에 집어넣어버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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